| 기사입력 2008-10-30 19:03
프로야구단 SK 와이번스의 이만수(50) 수석코치는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놀라운 실적을 거두고 있다. 포수 박경완이 '야구 육상부'로 불리는 두산의 발을 효과적으로 묶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올해 페넌트시리즈 때부터 한국시리즈의 두산전을 철저히 대비해 왔다. '올해 정규리그에서도 한번도 두산을 완벽하게 이긴 적이 없다'는 그의 말이 일년 내내 두산전을 염두에 둬왔음을 웅변한다.
이 코치는 한국시리즈에 선착한 뒤 준플레오프와 플레이오프가 열리는 동안 두산을 대비한 가상훈련을 반복했다고 한다. SK는 지난해 한국시리즈 때도 두산에 홈에서 1·2차전을 패한 경험이 있다. 상대 주자의 도루를 저지하고 투수를 리드하는 것은 포수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포수 출신인 이 코치는 최고의 포수 조련사다. SK가 두산 주자들의 발을 어떻게 묶을 것이냐는 승부와 직결돼 있다.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만난 이 코치는 두산과의 경기 전망에 대해 "최선을 다할 뿐 결과를 예단하지는 않는다"며 여유를 보였다. 튀기를 좋아하는 이 코치가 표정을 최대한 감추는 김성근 감독의 지도 스타일에 잘 조율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 코치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삼성에서 데뷔한 뒤 MVP(83년), 최초의 타격 3관왕(84년), 3년 연속 홈런왕(83∼85년), 12년 연속 올스타 베스트 10(82∼93년) 등을 차지했다. 그러나 16년간의 프로선수 생활을 마치고 97년 은퇴해 미국으로 건너간 뒤부터 정신적인 고통을 많이 겪었다.
"사실 삼성에서 쫓겨나 미국으로 도망간 거였어요. 마이너리그 클리브랜드 인디언스의 타격코치를 맡았는데, 중학교 때부터 공부는 안하고 운동만 해서 ABCD밖에 몰랐지요.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았고 팀문화도 달랐죠. 너무 힘들어 훈련이 끝나고 숙소에 오면 샤워기를 틀어놓고 수없이 울었어요. 한국으로 가고 싶어도, 선수하다 잘려서 왔는데 코치도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갈 수도 없었죠. 이때 신앙이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을 일대 일로 만날 수 있는 기회였어요."
그는 아내 이신화(50)씨와 한양대 1학년 때부터 캠퍼스 커플이었다. 운동장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이씨는 앉아 있고, 그는 스윙 연습을 했다. "집사람이 첫 여자였어요. 참 좋아했지요. 집사람이 한번은 교회에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넌지시 물어보더라고요. 운동 때문에 교회 갈 시간이 없다고 거절했죠. 지혜롭게 전도하더군요. 1주일 뒤 한마디 슬쩍 얘기하고, 안되면 한달 뒤에 또 얘기하고, 그런 식으로 3년을 끌었어요."
결국 그는 이씨에게 이끌려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갔다. 조용기 목사가 설교를 마친 후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사람은 일어나라고 했다. 이씨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일어서서 기도하는데, 온몸에 전율이 흘렀어요. 이제까지 너를 기다렸다는 음성을 들었죠."
신앙을 키워가는 그의 곁에는 항상 이씨가 있었다. 아름다운 사랑 끝에 결혼한 두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란 뜻을 가진 큰아들 하종(25), 예수님의 종이란 의미의 둘째아들 예종(20)을 두고 있다.
그의 신앙은 야구와 호흡하며 성장을 거듭해 왔다. 그는 "야구도 연습을 해야 하듯이 신앙도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이너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불펜코치로 있던 9년 동안의 미국생활은 그에게 신앙 성장의 기회였다고 한다.
그는 2006년 말 귀국하자마자 삼성구단을 방문했다. "삼성에 대한 분노를 씻은 뒤였어요. 2003년 미국에 있을 때 삼성이 코치직을 제의해서 귀국하기 위해 짐까지 다 쌌었죠. 그런데 구단측에서 갑자기 제의를 철회했다는 것을 언론을 통해 알았어요. 분한 마음에 미국에서 보란 듯이 성공해야겠다고 이를 악물었죠. 결과적으로 소속팀이 2005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경험까지 하게 됐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 같아요."
SK와 계약금 없이 연봉 1억3000만원에 수석코치로 계약해 2년째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좋은 신앙인과 야구인이 되는 것이 인생의 남은 목표"라고 말했다. 좋은 감독이 되는 게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감독은 일시적인 것이지 영원한 게 아니잖아요. 팬들에게 좋은 야구인으로 기억되고 후배들에게 멘토가 되고 싶어요."
인천 은혜교회에 출석하는 그는 선교사로 멀리 가지는 못하지만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1군에서 2군으로 내려가는 후배라도 있으면 손을 잡고 기도를 해준다. 삼성 선수 시절에는 신우회를 조직해 선수들을 억지로라도 데리고 새벽기도를 가곤 했지만 지금은 코치라는 직책 때문에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만 교회를 다니지 않는 팬들을 만나면 전도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는 "내가 전에 전도했던 기억도 없는데 내 말을 듣고 신앙을 갖게 됐다는 사람을 만나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인천=신종수 기자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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