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원하고자 한다면 뭘 해도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자기 부하를 죽여도?"
"그렇습니다. 잘 이해하셨군요."
"완전 미친 거 아니야?"
"쉿. 그렇게 미치진 않았습니다."
"어째서?"
"그거야, 보기에는 아무렇게 죽이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을 알아보면 대부분의 경우에 죽을 짓을 한 이들이기 때문이죠."
엘란츠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 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정당한 이유를 대고 처벌을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거기로 안 가면? 언제 왕이라는 인간이 죽일지 모르는 거잖아."
"정당한 이유 없이 안 오면, 그 때는 직접 찾아가서 그 이유를 확인하기도 하고, 만약 그게 거짓이라는 게 밝혀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죽는 거야?"
알란은 고개를 살짝 숙여 엘란츠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어 마주한 후, 조심스럽게 말했다.
"겁쟁이라고 놀림 받습니다..."
"그럼 그냥 놀림 받는 게 더 나은 거 아닌가?"
"아뇨. 그거야말로 최악이죠. 어딜 가더라도 겁쟁이라고 놀림 받을 테니까요. 한 번은 공정해야 하는 자의 칭호를 받은 이가 하는 일이 너무나 바쁘다고 해서 왕이 직접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고 있을 뿐이었죠. 그래서 다음날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왕이 그에게 겁쟁이라고 놀리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다들 아무 말없이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받아들였을 뿐이었죠."
알란은 한층 더 표정을 굳혀 이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강조했다.
"하지만 말의 힘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가 그를 겁쟁이라 부르며 놀리기 시작했고, 그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수염이 빠지더니 끝내는..."
알란은 말을 끊고 더 이상 잇지 않았다. 엘란츠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봤으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엘란츠는 그런 상호작용에 대한 눈치가 전혀 없었기에, 무안해진 알란은 헛기침을 했다.
"어험, 어험. 저어... 끝내는? 하고 물어보시죠."
엘란츠는 알란에 대해서 이상한 사람이란 생각을 조금 갖게 되었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기에 끝내는? 하고 물어보기로 했다.
"..."
물어보기로 했다.
"끝내는?"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려서 대머리가 되었죠.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란 말입니까. 결국 그는 충격으로 제대로 식사도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흉측한 모습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정말 기나긴 고통을 겪은 셈이죠."
"왕이라는 자는 정말 나쁘구나."
"뭐, 왕이 나쁘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각자 맡은 일이 있고, 그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자리인데 나오지 않으면 문제가 되겠죠. 나라를 돌보는 일이라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그래, 쉽지 않은 일이지. 밥상 머리에 이딴 게 올라오기도 하니 말이지."
"선생님! 그런데 그건...?"
"저게 뭐야?"
뻐끔 뻐끔-
제레먼이 조용히 올라왔기 때문인지, 알란과 엘란츠가 서로 이야기하는데 집중했기 때문인지, 아무도 그가 말하기 전까지 올라오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 그의 손에는 왕성에서 받은 머리를 제외하고 뼈만 남은 물고기가 들려있었다.
게다가 여전히 물고기는 입만 뻐끔거리며 움직였다.
"오늘 왕께서 굉장히 노하셨다. 누구 짓인지 모르겠지만, 시중으로 변장해서 첫 식사에 이런 것들을 내놓은 모양인데 도대체 의도가 뭔지 모르겠단 말이지. 암살을 시도했으면 먹을만한 음식에 독을 넣었어야 했는데... 오는 길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어서 결국 돌아왔지."
"저주가 걸린 생선 아닙니까?"
제레먼은 한쪽 눈을 찌푸리듯 감고, 감은 쪽의 입꼬리를 올리며 엘란츠를 남은 한쪽의 눈으로 쳐다본 후, 다시 눈을 뜨고 말했다.
"잘 모르겠네. 조사를 해보는 게 좋겠지."
"조사라 하심은..."
"우선은 변장을 당했던 왕의 시중에게 찾아가야지."
알란은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 되어선 말했다.
"만약 그 자가 그런 알 수 없는 행동을 한 범인이라면 위험한 것 아닙니까? 왕성에서 병사를 얻어가심이 어떻습니까?"
"아직 세상을 보는 눈이 그래서 예언자가 되겠는가. 스투피두드의 병사라는 놈들은 위험이 다가오면 제일 먼저 도망갈 녀석들만 모여있지. 오죽하면 왕이 병사를 지키기 위해 있다는 말이 있겠나."
알란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수가 조금이라도 늘어난다면 그걸로 위협은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군. 같이 가지 않겠나?"
제레먼이 씨익 웃으며 잘 다듬어진 수염을 왼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알란은 깜짝 놀랐고, 엘란츠는 별다른 기색 없이 둘의 대화를 바라보기만 했다.
"네!? 저는, 전혀 싸울 줄 모릅니다."
"나는 싸울 줄 알아서 가겠는가? 자, 이걸 받게."
제레먼은 자신의 옷에 묶어둔 갈색의 가죽 주머니에서 금색으로 빛나는 작은 물건을 자신의 제자에게 던져주었다. 금화다.
알란은 금화를 한 닢 받고는 신기한 듯 눈이 동그래져 이리저리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걸 어디에..."
"대장간에 들려서 쓸만한 검 세 개를 칼집까지 같이 사오도록 하게."
"정말로 그렇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어차피 어떤 놈이 그랬는지 찾지 못하게 된다면 내 목이 날아가는 건 마찬가지니, 가만히 목을 잘리는 것보단 위험을 무릅쓰고 찾는 게 더 났겠지. 그리고 너, 너도 따라가."
제레먼은 엘란츠를 손으로 가리켰다.
"나?"
"그래."
"왜?"
"당분간 내가 널 돌볼 생각이니까. 어차피 달리 갈 곳도 없잖아? 게다가 이걸 봐."
뻐끔- 뻐끔-.
"이 지경이 되어서도 살아있잖아. 달리 보면 수명 연장이랑 관련이 있지 않겠어?"
"원래 그렇게 생긴 게 아니야?"
엘란츠는 생선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어떤 생선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겠나."
제레먼은 엘란츠의 얼굴 앞으로 들고 있던 생선을 가져다 대었다. 정말 수명 연장과 관련이 있을까? 그의 말을 들은 엘란츠는 어쩌면, 이라는 가능성을 머리 속에서 떠올렸다.
"알았어."
자리에서 일어난 엘란츠, 그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 판단이 전혀 서지 않았지만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다짜고짜 공격하지도 않았고, 말이 통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제레먼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따듯함이 담겨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자신을 바라볼 때의 눈빛과 닮아있었다.
"알란, 혹시 모르니 되도록 여기 이 이방인이 쓸데없는 행동을 하려고 한다면 바로 제지해주게. 괜히 골치 아픈 일이 되지 않도록 말일세."
그리 많은 대화는 아니었지만 엘란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된 알란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만. 알고 있지 않는가. 다 예정 된 일들이네. 예언가의 일이란 그런 거지."
"네. 그러면 가시죠."
알란은 엘란츠에게 오른손 손바닥을 위로 보이게 하여 천천히 자신의 앞쪽으로 휘저은 후, 앞장서서 천천히 밑으로 계단을 통해 이동했다.
탑의 계단은 파손 되어버린 위층과 현재 있는 층의 바닥이 목재와 그 위로 부드러운 모피로 잘 마감되어있던 것과 달리 묵직하고 커다란 돌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가 유독 크게 났던 것이다.
제레먼이 임시로 있던 층에서 밑으로 세 번 내려가고 나니, 아무것도 없이 나무에 쇠를 덧대어 만든, 아니. 쇠에 나무를 덧대어 만들었는지 모를 비율의 커다란 문이 주위 공간 하나 없이 계단과 연결되어 있었다.
알란에 의해 문이 열리고, 엘란츠는 처음으로 행성 스뫄나이자 그 안에 있는 한 개의 거대한 도시 국가, 스투피두드의 땅을 밟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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