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각역으로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이 서로 닉네임으로 인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서로의 머리속에는 단 두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이새끼가 그 병신새끼구나"
그리고
"나빼고 다 병신이니까 오늘 저 여자는 내가 따먹을 수 있겠구나"
꼬막 세번째 접시가 비워질 때 쯤, 온라인에서 만큼이나 이빨을 잘 털던 A가 2차로 옮기자고 했고
다들 생각도 안하고 있던 '계산'에 대한 부담이 막상 눈앞에 들이닥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방에서 최대한 밍기적 거리며
갈 곳 잃은 동공으로 참이슬 포스터를 응시하거나
괜히 가방을 뒤적거리며 찌질한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화장실에 다녀오며 "내가 이미 계산했어" 라고 말하던 B의 목소리를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다른 유저들과는 다르게 사업해서 돈도 많고
밖에 눈이 많이 오니까 자기 차로 이동하자던 매너까지 갖춘 B.
C가 그에게 끌렸던건 어찌보면 당연했을지도.
A는 이제야 맘이 놓였는지 다시 농따먹기를 시작했고 D와 E는 다시금 웃음을 보였다.
2차는 설렁탕 집에 가기로 하고
눈이 내리니 여자는 자기 차로, 차에 다 타기 좁으니까 남자들은 걸어오라는 말에
A,D,E는 기분이 좀 나빴지만 10만원도 넘는 술값을 통크게 계산을 한 B에게 반기를 들기는 어려웠다.
A,D,E는 눈때문에 차도 막힐테니 우리는 천천히 나가자 하고는
"우~ 치사하다 ㅎㅎ" 라는 말로 자존심을 세워봤지만
하이힐을 신고 재빠르게 B의 뒤를 따르던 C의 발걸음 소리에 귀.. 아니 귀두가 움찔했다.
A,D,E는 남은 소주를 비우고서야 가게를 나서다가 아직 계산이 되지 않았다는 주인의 말에 발이 묶였다.
술기운에 주인과 한창 말다툼을 하다가 계산 여부를 확인하려고 B에게 전화하려던 D는
12월 무료통화시간을 다 써서 전화가 안되자 문자밖에 못 보낸다.
"형 여기 계산이 안됐다고 해서 지금 다 못나가고 잡혀있어요 어디예요"
B에게 답장이 왔다.
"무슨소리야? 아까 다 계산했어"
간단한 답장만큼이나 주인의 거절도 간단했다.
"아무도 계산 안하셨다니까요?"
A는 통신사 마크가 찍힌 명함을 보여주며
"내가 이런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인데 이까짓거 떼어먹겠냐"며 주인을 설득했지만
왠일인지 명함에는 직급대신 스마트 지니어스라고만 박혀있어 주인이 믿어주지 않았다.
B와 함께 차를 타고가던 C는 "오빠 ㅎㅎ 저기 누누 라고 쓰여있는거 뭔지 알아요?"
"뭔데?"
"저거 모텔이래요 ㅎㅎ 웃기죠?"
"진짜? ㅎㅎ 난 되게 유명한 건물인줄 알았어"
"ㅎㅎ 여기서 젤 눈에 띄는 간판인데 모텔이라니까 너무 웃긴거있죠 ㅋㅋ"
"ㅋㅋ 그러네 웃기다"
(B의 핸드폰이 울린다)
"뭐예요?"
"응~ 애들인데 걸어오려니 추워서 거기서 술 더 마신다고~"
"아~ 그래요? 그럼 우리끼리 2차 가요 오빠 ㅎㅎ"
사락사락 기분좋게 눈이 내리던 종로의 겨울밤.
D는 집에 갈 돈이 없는데 집에 전화할 수가 없다며 가게 주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다가 울음을 터뜨렸고
E는 가게 주인과 싸우다가 경찰에 끌려갔고
A는 도망가다가 종각역 계단에서 넘어져 발목에 금이갔고
B는 곤지름을 얻었고
C는 새생명을 얻었던
그 겨울밤을 나는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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