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첫사랑 그녀와 우연히 마주치게 됨으로써 말이다.
처음으로 나를 남자로 만들어준 그녀에 대한 아련하고 애뜻한 감정을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첫사랑'이라는 숭고한 단어는 그 모든 이야기를 대신 해줄 것이다...
그렇게 꿈꿔왔던 순간이다. 나라는 보잘 것 없는 몸뚱이 앞에 그녀가 정말로 서 있고
입을 열어 가슴속에 힘껏 꾹꾹 담아놓은 그 말,
"안녕 잘지냈어?"
이 한마디를 내뱉는다면 다시 그녀와 나는 세상에 실존하는 관계가 된다.
내가 너를 몰랐을 때 나는 태어나지 않았고, 내가 너를 잃었을 때 나는 죽었다.
나를 상태에서 역사로 만들어준 너와의 시간들.
짧지만 생에 한번 내 심장이 명백하게 쿵쾅쿵쾅 뛰고, 내 눈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머금었고, 내 다리가 너를 향해 멀리 날아올랐던 그 시간들.
오직 그 때만이 내 흐릿해진 기억력이 잡고 있는 짧은 '생'의 순간이다.
나는 그 날 죽은 이후로, 식물인간이 되어 눈만 껌뻑이며 재기를 꿈꾸었다.
나를 만나 생겨난 모든 아픔이 사라지고, 고맙게도 나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간직하며 살다가 정말 기적적으로 나를 다시 원하게 되기를 수도 없이 상상하고 바랐다.
그 일념으로 버텨왔다. 공부가 힘들 때면 언젠가 맞이할 그 순간을 위해 마음을 다잡았고,
악한 마음이 들 때면 착한 너를 꼬옥 껴안으며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하지만 몸은 변한다. 매일 아침 내 몸에 낯선 세포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마음도 변하고 어느 순간의 불 같던 의지도 사그라든다.
그리고 방금 전
너를 본 순간 아무 말도 못한 채 고개를 돌리며, 제발 나를 알아보지 못했기를...
알아봤다면 아팠던 기억들을 떠올리지 않기를, 내가 네 삶에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기를 바랐다. 나는 지금 그 무엇도 아닌 그저 세상을 부유하는 존재일 뿐이다.
설령 내가 무엇이 되었다 하더라도 결국 나는 네게 트라우마일 거라는 생각.
그동안 내가 숨겨왔던 무의식의 공간에 빼곡했던 그 생각이 나의 온 의식을 점령하면서
내 스무살은 침묵 속에 울부짖었다.
힘겹게 나의 백골들을 집으로 마디마디 옮기며 나는 생각했다.
나의 이십대가 끝났다. 보잘 것 없던 이십대가 끝났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이루더라도 행복해질 수 없을 것만 같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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