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녀는 자신의 몸속에 있는 독을 이겨내지 못했고, 유언조차 전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소년에게 했던 유일한 행동은 그저 그의 볼을 쓰다듬는 것 뿐이었다.
자신의 나이조차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소년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기에 눈물을 닦고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고, 결국 자신을 낳아준, 가장 존경하는 이를 땅속 깊이 묻었다.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고, 많은 체력이 소비되었다.
그 덕에 빛은 사라지고 어둠만이 남아 소년의 체온을 급격하게 빼앗아갔고, 그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 후, 언제나처럼 자신의 몸 전체를 감싸줄 옷을 걸치고 최대한 체온을 뺏기지 않기 위해 몸을 벌벌 떨었고, 대비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후회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신중해야 했다.
낭비된 체력으로 인해 찾아오는 허기 때문에 배에서 요동을 치고, 머리 속에는 또다시 다른 후회들이 몰려들어온다. 그리고 당장 내일부터는 이제까지 자신이 배워왔던 것을 실수 없이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몰려왔다.
그러기 위해서는 잠을 자둬야 했지만 그는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어머니의 죽음과 자신의 굶주림, 앞날에 대한 막막함이 한데 겹쳐 오는 스트레스와 추위로 좀처럼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그 날 겨우 잠든 소년의 꿈속에서는 현실에서 볼 수 없던 푸른 들판과 강물에서 어머니와 같이 물장구를 치며 놀았고, 그러다 갑자기 점점 멀리 사라져가는 모습에 울며 쫓아갔지만 따라잡을 수 없었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의 눈가를 닦았지만 이미 메말라 있어 닦을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죽음으로부터, 많은 것을 그녀가 아끼던 책으로부터 배우고 살아온 그였지만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하며 종종 어릴 때의 꿈을 악몽처럼 반복해왔다.
그의 이름은 엘란츠,
강렬한 햇살 속에서 많은 것을 보기 위해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모래 바람과 뜨거운 빛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만약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때를 대비해 여러 낡은 천들을 몸에 걸친 후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이 날 엘란츠는 밖으로 나와 황량한 황갈색의 모래들을 보는 순간, 다른 때와 미묘하게 다른 느낌을 받게 되었고 그대로 현기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잠시 문 앞에 주저앉아 생각했다.
'오늘은 쉬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고개를 뒤로 자신의 집 안을 한번 바라보았다.
'아니지, 며칠 동안 계속 실패했는데 이러다가 굶어 죽을 거야.'
결국 엘란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몇 걸음 걸었다. 자신이 바보같이 사냥 도구를 전혀 들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오랜 기간 저지르지 않았던 실수에 다시 한 번 생각하기로 했다.
'꼭 밖으로 나가야 하는 날일까? 어쩌면 오늘이 굶기 전에 먼저 죽는 날이 될 수도 있어. 불길한 날이야. 불길해.'
오른손에는 이미 다 녹슬어있는 쇠 꼬챙이가, 왼손에는 서툴게 만들어진 천 주머니를 들은 채로 또다시 문 앞에 멈춰버렸다.
'아니야, 역시 나가야 해. 뭔가 구해서 먹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먹지 못해서 그래. 틀림없어. 만약 이 이상으로 뭔가 이상한 일이 더 생긴다면 그 때는 관두도록 하자.'
그로부터 밖으로 나와 계속 걸어 다녔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냥감도 찾지 못하고, 그저 황량한 사막과 좋지 않은 공기만이 그를 반겨왔고, 지친 나머지 엘란츠는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주저앉은 자리 바로 앞에는 자신이 갈 수 있는 한계 위치를 정해둔 또 다른 쇠꼬챙이가 황갈색 모래에 파묻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이상 걸어나가게 된다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표시였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도 이와 같은 표식을 두고 날마다 가서 쌓인 모래를 거두고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고 있던 것이다.
이제 돌아가는 길에 뭔가 발견되길 바라는 것 밖에 남지 않았고, 그의 경험으로 비춰보았을 때 그런 행운은 이제까지 존재한 적이 없었기에 그저 체력만 낭비했다는 점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디서 들어본 적 없던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메마른 공기 중의 울림을 통해 피부에 닿아 그 흐름이 다르다는 것을 미세하게 알아챘고, 그것이 소리로 바뀌었을 때, 엘란츠는 황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지면의 열로 인한 아지랑이에 의해 흔들리는 물체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오, 이런 빌... 게이츠."
엘란츠는 너무 놀란 나머지 금지된 언어를 내뱉을 뻔했지만, 곧바로 바꿔 책에서 보았던 인물의 이름을 의미 없이 말한 후, 뒤돌아서서 뛸 준비를 했다. 머리 속으로는 이미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벗어나려는 시도를 본능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가 본 것은 쾅쾅 터지는 폭음을 내며 대지와 대기에 진동을 주며 희생자를 향해 달려나가는 미쳐버린 쇳덩어리였다.
사실 진짜 달리고 있는 것은 그 쇳덩어리에 붙어있는 커다란 바퀴였지만.
지금의 엘란츠에게는 그런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이 전혀 모르는 이의 이름을 외치며 달릴 뿐이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질 없이 잡혀버렸다. 잡힐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오늘은 날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밖으로 나와서는 안됐다.
엘란츠가 뒤통수에 전해지는 고통에 신음을 하며 눈을 떴을 때, 그는 움직일 수 없게 묶여있었고 눈 앞에는 즐거운 듯 떠들고 웃으며 불을 쬐고 있는 근육질로 가득한 이들이 뭔가 씹어 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다른 피해자일 것이라. 지금 세상에서 그들이 들고 있는 커다란 고기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남은 일은 저장된 식량으로써 언젠가 자신도 저기 야만스러운 식인종들이 들고 있는 고기와 같은 상황이 다가오는 걸 기다리는 것 뿐이다. 그들은 상하는 것을 대비해서 살려두고, 식량이 떨어지면...
처리하여 새로운 식량을 만들어낸다.
만약 그가 오늘 집에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집 근처에는 이런 일을 대비할 수 있는 덫이 충분히 많았다. 더불어 한 가지 더, 지금 그들이 먹고 있는 고기가 마지막 덩어리인 듯 보였고, 다른 희생자는 없는 듯 했다.
곧, 그의 차례가 오게 된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엘란츠는 이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 더 이상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 대신 자신이 남길 말을 생각했다.
'빌'로 시작하는 금지된 언어였다. 그게 그가 마지막 순간이 되면 남길 말이었다.
식사가 끝난 후, 온갖 입에 담기 힘든 수준의 더러운 말들이 그들 사이에서 오가고 그들은 호쾌하게 웃었다. 그 후 엘란츠에게 그들 중 하나가 다가가 그를 묶고 있던 밧줄을 풀어버렸다.
처음 엘란츠는 그게 뭘 뜻하는지 몰랐기에 자신을 놓아주는 거라 생각했지만 그 다음 그가 한 행동에서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발버둥 쳤다. 그렇게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할수록 뒤에서 비웃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러다 그들 중 하나가 소리쳤다.
"저거 봐! 별이 떨어지고 있어!"
별이 떨어진다는 소리에 엘란츠를 제외한 모두가 멈췄다. 위에서 그를 짓누르고 있던 이조차 멈춘 것이다. 하지만 엘란츠는 여전히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소원! 소원을..."
이런 시기에 그들에게 담긴 유일한 순수함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 모두가 눈을 감고 자신들의 소원을 떨어지고 있는 반짝이는 별을 향해 빌기 시작했다.
제각기 다른 소원이지만 그 속에 담긴 것들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다른 희생자들을 많이 찾게 해주세요, 더 많은 노리개를 구하게 해주세요, 충분히 부려 먹을 수 있는 튼튼한 인간을 찾게 해주세요.
따위의 소원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정말로 절실한 바람을 가지고 있던 이가 있으니...
'제발 이 지옥 같은 순간을 벗어날 수 있었으면...!'
엘란츠의 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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