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빌고 나서 눈을 뜬 이의 앞에 그런 말도 안되는 광경이 펼쳐지자, 입이 떡 벌어지게 되었다. 놀라서 벌어진 입 만은 아니었다. 목의 사용을 위해 벌린 입이기도 했던 것이다.
"저, 저거!"
하려고 했던 말을 모두 내뱉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그 순간 만큼은 엘란츠를 포함한 모두가 하늘을 쳐다보았고, 엘란츠의 위에 있던 사내가 제일 빠르게 외치며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모두 피해!!!"
단순한 별이 아니었다. 그 거대한 빛 덩어리는 하늘을 가로지르고 바닥으로, 하필이면 그들이 모여있는 곳을 향해 떨어지고 있던 것이다.
제일 먼저 뛰쳐나간 이를 뒤따라가는 야만인들, 그 모습을 보고 엘란츠도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반쯤 벗겨져 있던 바지 때문에 제대로 일어나질 못했다.
어느새 별빛은 가까워져 바로 앞까지, 예상치 못한 일에 엘란츠는 눈을 질끈 감고 두 팔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엘란츠가 팔을 내리고 눈을 떴다. 여전히 그는 살아있었고, 몸은 어디 하나 다친 곳 없이 바지는 반쯤 내려간 상태로 걸치고 있는 흉한 꼴로 누워있는 건지 앉아있는 건지 모를 자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것은 말도 안되게 거대하고 검고 둥근 것이 좀 전의 식인종들이 뛰어갔던 자리에 박혀있는 모습이었다.
도망치던 이들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엘란츠는 이런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졌고, 현실감을 상실한 나머지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어보았다. 그 결과, 뒤통수에 쓰라린 통증이 이것이 현실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는 끔찍한 일을 당할 뻔했던 흔적을 끌어올려 다시 제대로 입은 후, 정체 모를 물건에 가까이 다가갔다.
'이게 뭘까? 정말 별이 이렇게 생긴 건가?'
매끈한 검은색, 자세히 보면 금이 간 것처럼 알 수 없는 문양이 잔뜩 새겨진 거대한 물체를 보며 만져도 되는 건지, 위험한 건 아닌지 계속 확인해보았지만 엘란츠가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그가 언젠가 어릴 적에 운이 좋아 먹었던 알을 눕혀 놓은 것과 비슷하다는 사실에 잔뜩 굶주린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입에서는 침이 고였다.
고민하던 끝에 엘란츠는 좋은 생각이 떠올라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땅에 있는 모래를 한 줌 쥐어보았다가 앞에 놓여진 물체를 보고 다시 땅으로 흘려낸 후, 눈으로 확인 될 수준의 모래를 한 톨만 집어던졌다.
"아얏!"
그의 눈에 잠시 빠른 무엇이 자신의 얼굴 근처에 스치는 모습이 들어왔고, 입 밖으로 통증에 의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의 뺨에는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는 느낌에 손으로 자신의 뺨을 만져서 무엇이 흘러내린 것인지 확인했다.
붉게 물들어 있는 손,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놀라 뒤로 물러났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손에 쥐었던 모래를 흘려보내지 않고 모두 던졌다면 지금 자신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 순간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제 엘란츠는 앞에 있는 물체가 무엇인지 상관없게 되었다. 그저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어 뒤돌아섰다.
그 순간, 푸슈슉 하는 소리가 돌아서자마자 들려왔다. 방향은 바로 뒤, 정체 모를 물체가 있는 곳이다.
무슨 소리인지 확인하기 위해 무심코 고개를 돌린 엘란츠는 그대로 자리에 멈춰서 돌아서게 되었다.
알이 누워있던 형태를 하고 있던 물체의 일부분이 하얀 수증기와 함께 열린 것이다. 그 안은 어두워서 무엇이 있는지 확실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조금 더 가까이 가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안에 무엇이 있더라도 좀 전에 자신에게 가해진 위협을 넘어서는 위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 가지 생각이 엘란츠의 마음을 뒤덮었다.
때문에, 엘란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어머니,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시지 않았잖아요. 세상에. 도대체 이게 뭔지 모르겠어요."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우웅- 하고 높고 짧은, 차가운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뒤이어...
"안으로 들어오렴, 나의 아들아."
맑고 선명한, 그러면서도 조금은 앳된 여성의 이질적인 목소리가 거대한 물체 안에서부터 흘러나왔다. 게다가 목소리는...
'전혀 닮지 않은 목소리잖아...?'
그랬다. 전혀 다른 여성의 목소리였다.
'아무리 봐도 수상해. 이상하잖아. 역시 빨리 여길 벗어나는 것이 좋겠어.'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엘란츠는 조금씩 거대한 물체의 열린 부분, 입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분명 그는 몸을 다시 돌렸고, 다른 방향을 향해 걸었지만 계속해서 입구를 향해 방향이 바뀌었다.
때문에 그는 걷다가, 더 빨리 걷다가, 결국 뛰어보기도 했지만 전혀 벗어날 수 없었다.
'뭐야... 이게... 이상한 일만 계속...'
밖으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이제 그는 안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악몽이야. 정말. 이건 악몽일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기로 했다.
어두컴컴한 물체의 안, 바닥에는 빛나는 푸른 선이 그어져 있고, 그 외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눈에 봐도 이곳이 길이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로 갈 수 밖에 없겠어.'
불안한 마음을 떠안고 유일하게 보이는 푸른 선을 따라 한 발자국 발을 내딛는다. 그렇게 앞으로 한 걸음 걸어나갔을 때, 바닥의 작은 진동과 함께 쿵.
엘란츠는 소리가 난 방향을 다급하게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들어왔던 입구는 닫혀버리고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닫혔어!'
가슴 속 무엇인가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은 그는 멍하니 자신이 들어왔던 곳을 보다가 생각을 바꿔 자신을 다독였다.
'좋게 생각하자. 좋게. 긍정적인 마음이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온다고... 어차피 나갈 수 있었으면 벌써 여길 벗어났을 거야.'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이 나아가야 할 곳을 바라보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일자로 길게 뻗어있던 선이 방향을 틀고 그 방향에 따라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엘란츠, 다시 또 길고 길게 걸어나갔다. 그러다 결국 선이 멈춰선, 더 이상 길이 없는 막다른 지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제 어떻게...'
계속 땅만 보고 걸어가던 엘란츠는 고개를 들었고, 그 곳에는 빛나는 하얀 사각의 종이처럼 보이는 것이 어둠 속 한 가운데에 떠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엘란츠의 눈 앞에 있는 것은 예쁜 여자아이가 그려진 빛나는 종이였다. 노란색 단발의 머리카락에 푸른 눈, 붉은 입술, 작은 콧구멍. 눈을 깜빡이고 입을 열어 안녕하세요 라고 활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반면, 엘란츠는 그림이 살아서 움직인다는 사실에 입을 크게 벌린 채 놀랐다.
아주 짧은 시간이 멍하니 지나가고 여자아이의 얼굴은 감은 눈으로 밝게 웃는다. 그와 동시에 엘란츠는 깨달았다. 방금 들은 목소리가 밖에서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목소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너, 넌 뭐야?"
"저요? 저는 아루잔이라고 해요!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엉겁결에 자신의 앞에 놓여진 것에게 무엇인지 물어본 엘란츠,
그 말에 자연스럽게 놀라는 얼굴과, 웃는 얼굴을 번갈아가며 자신을 아루잔이라 말하는 여자아이의 모습을 한 움직이는 그림이 엘란츠의 이름을 물어본다. 하지만 그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한동안 또다시 멍하니 쳐다볼 뿐이다.
그러자, 아루잔이 다시 말했다.
"어머? 이름이 없는 걸까? 그러면 제가 사용자의 이름을 지어보도록 하겠어요. 어디 보자~"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고 입술은 동글게, 무언가 생각하는 듯 한 모습이 되었던 아루잔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웃으며 말한다.
"개똥이? 개똥이 어때요?"
"뭐, 뭐라고...?"
엘란츠는 조금씩 정신을 차려 혼란스러운 이 상황 속에서 간신히 되물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요? 그러면..."
"잠, 잠깐만... 도대체 넌 뭐야?"
"말똥이... 네? 저요? 전 아루잔이라고 해요!"
아루잔은 또다시 자신이 아루잔이라는 사실을 대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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