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어때? 사기가 아니야?"
엘란츠의 말에 진지함이 전혀 없는 우는 얼굴을 보여주는 아루잔.
"아닙니다! 확실합니다!"
"그러면 난 뭘 하면 되는 거야?"
다시 멀쩡한, 이전의 얼굴로 돌아온 아루잔이 웃으며 말한다.
"네, 두 곳 중에서 마음에 드시는 곳을 정해주시면 됩니다!"
아루잔의 얼굴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하얀색 동그란 원형, 자세히 보고 있으면 단순히 하얗기만 한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있는 흐름이 보인다.
"행성 스뫄나입니다. 여러 국가로 형성된 행성이며, 여행자의 출입이 적은 편입니다. 위험 요소는 적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지구... 같은 곳이야?"
"어떤 의미를 부여하시는 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인간형 생물이 살고 있는 행성으로 확인되어있습니다."
"그렇구나."
"그러면 다음 장소를 설명하도록하겠습니다."
스뫄나의 모습이 사라지고 사각으로 이루어진 검은 덩어리가 일렁이는 모습이 나타나 전체적으로 어떤지 보여주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는데 입체적이지 않은 2차원 평면이었다.
"대 노무라 의료 공방입니다. 다차원의 공간과 연결되어있으며, 위험 요소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일반적으로 입장에 초대가 필요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의료 실험이 이뤄지고 있는 장소입니다...만, 정보가 유독 적으며 전설과 소문인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러면 그 초대라는 건 어떻게 받아야 해?"
"그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흘러가는 정보에 따르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고 되어있습니다."
'아까는 가깝다고 하지 않았나... 찾아다니는 거라면 어떻게 어디 있는지 아는 거지.'
"가깝다고 하지 않았어?"
"네! 제 기준으로는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습니다. 계속해서 위치 방해 공작을 퍼트리고 있으며 다차원을 지닌 것, 알려진 모습이 대 노무라 의료 공방과 일치하였기 때문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초대라는 게 없는데 찾아가면 어떻게 되는 거야?"
대 노무라 의료 공방의 모습이 사라지고 아루잔의 얼굴이 나타났다.
"침입자로 간주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나는 침입자가 되고 싶진 않은데..."
"행성 스뫄나로 결정하시는 건가요?"
"사실, 나는 이대로 죽어도 크게 상관없어. 고통스럽게 죽는 것도 아니니까. 왜 굳이 내 수명을 늘려야 하는지 모르겠어."
엘란츠의 말이 끝나고 잠깐의 정적, 그리고 아주 큰 외침.
"네에에에!? 뭐라구요!?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주세요! 만약 사용자 엘란츠 님께서 사망에 이르게 된다면 저는 제 목적을 잃고 맙니다!"
"괜찮아.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고 어머니께서도 그러셨거든. 깡통에 적혀있는 유통기한이라는 것처럼."
"그렇지 않아요! 인간은 기술의 발전으로 생명의 유지를 늘려나갔어요. 지금은 비록 남은 시간이 없어서 제가 왔던 곳까지 닿지 못하겠지만... 그 전에 죽어버리면 저는 자폭해버릴 거에요!"
버럭버럭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이 되어 말하는 아루잔. 하지만 여전히 엘란츠는 차분하게 생각하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간다.
'어차피 내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지구에도 있고 다른 행성에도 있는 거 아닌가...'
"왜?"
"네?"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는 거 아니야? 아까도 지구에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내가 죽고 난 뒤에는 다른 사람이 타도 되잖아."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에요. 사용자는 단 한 명. 그 이상은 없어요. 따라서, 아루잔은 엘란츠 님께서 사망하게 될 경우 목적을 잃게 됩니다."
'그 때는 어차피 내가 죽은 후에는 상관없지 않을까. 애초에 전쟁을 위해서 만들어진 거라면 그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은데.'
엘란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그렇게 하기로 하자."
"네!? 저 자폭할 거에요!?"
"지금 당장은 아니잖아. 괜찮아."
"그러면 지금 자폭하겠어요!"
아루잔의 눈이 빨간색으로 변한다. 하지만 이전처럼 곧바로 경고음이 나오거나 하진 않았다. 지금은 경고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죽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차피 난 이미 죽게 되어있었으니까..."
"제가 자폭을 하게 된다면, 엘란츠 님만이 죽는 걸로 끝나지 않아요."
"그건 무슨 말이야?"
아루잔의 얼굴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현재의 모습을 바깥에서 보여주는 것 같은 모습이 나타난다. 황색의 지구, 그 앞에 놓여진 검은 알의 형체. 아루잔.
먼저 아루잔이 가볍게 터진다. 그러나 그 폭발은 여러 번 반복하며 점점 커진다. 그 충격은 점점 지구까지 전달되고, 지구 전체가 붉게 되고 난 후에 폭발이 멈추게 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래 놓고 나한테 도망가라고 했던 건가.'
엘란츠는 끔찍한 영상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영상은 끝나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아루잔의 형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터진 이후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잠잠한 상태.
지구와 아루잔, 둘 만을 보여주던 모습은 서서히 축소되어 태양계 전체를 보여주고, 그것으로도 모자란 모양인지 원반의 형태를 지닌 은하계의 모습을 서서히 축소하여 엘란츠 역시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푸른색 불빛이 은하계 전체를 덮은 후 사라진다.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하는 푸른색 불빛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남아있는 반짝이는 점, 별을 삼키는 왜곡 된 구멍이 만들어진다. 블랙홀이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지만 축소되었기 때문에 작아 보일 뿐, 실제로는 어마어마하게 큰 크기다. 그러나 그걸로 모자란 모양인지 별을 삼킬수록 그 크기는 더욱 커져 그칠 줄 모른다.
다시 아루잔의 얼굴이 나타난다. 눈은 여전히 붉고 화난 모습이다.
"확실히, 알겠어. 하지만 난 더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저렇게 된다고 해도 별로 후회할 일은 없을 거 같아.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겼어. 도대체 60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짧은 거야?"
"1년이 60번 반복되면 60년입니다."
"1년은 뭔데?"
"몰라요. 어차피 사용자 엘란츠 님께서는 죽을 거잖아요. 대답 안 할 거에요."
아루잔은 고개를 돌리고 그 얼굴을 나타내는 빛나는 하얀 종이 역시 엘란츠에게서 비스듬하게 돌려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인간은 왜 살아가는 걸까.'
"인간은 왜 살아가는 걸까..."
하지만 엘란츠는 상관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삶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말했다. 생각과 동시에 나온 혼잣말이었다.
아루잔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여전히 엘란츠의 시선을 피한 채로 작게 대답했다.
"...그러게요."
"응?"
엘란츠가 살짝 놀란다. 그러자, 아루잔이 다시 엘란츠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려선 외쳤다.
"그렇잖아요! 기껏 안으로 데려와서 상태 보존도 시키고, 청결 상태도 점검하고 했는데 이제 와서 죽는다고 그러잖아요! 이런 게 어디 있어요! 해도 너무하잖아요! 안 그래도 얼마 살지도 못하면서..."
화를 내던 아루잔이 울먹거리기 시작한다. 이전과 달리, 진지한 얼굴인 상태다.
"인간은, 인간은..."
말을 하다 말고 멈춘 아루잔의 그림체가 달라진다. 둥글게 뭉개진 얼굴이 되었다.
"바보, 멍청이에요───!"
그 외침을 기점으로 붉은빛과 하얀빛의 점멸과 경고음이 시작되었다.
삐──────! 위이이잉─!
또다시 자폭의 시간을 알리는 숫자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숫자가 전에 멈췄던 86.7에서 시작되었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
"몰라요! 기다리지 않을 거에요! 터져버릴 거에요!"
엘란츠는 숫자를 보자마자 다급하게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아루잔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85.3
"갈게, 가면 되잖아!"
"싫어요! 어차피 가서 수명을 늘리게 된다고 해도 또 죽겠다고 할 거잖아요!"
83.9
"그렇지 않아! 어머니께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라고 하셨으니까. 난 살아남을 거야!"
"거짓말! 그러면 왜 아까는 계속 죽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랬어요!?"
82.3
"난, 빌어먹을 바보 멍청이니까!"
어쩌면 그는 제대로 된 기본적인 지식보다 욕을 먼저 배우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81.5, 80.9, 80.2….
경고음과 점멸이 멈췄다.
"알면 됐어요."
아루잔의 눈도 다시 맑은 푸른색으로 돌아왔다.
"후..."
엘란츠는 짧은 한숨과 함께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스뫄나로 향합니다. 바보, 멍청이 사용자. 엘란츠 님."
아루잔은 여전히 불만이 많은 듯,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얼굴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래. 부탁해."
긴장이 풀려 온몸에 힘이 빠진 엘란츠의 대답에 아루잔이 살짝 화가 난 얼굴이 되어 말한다.
"다신 그러지 마세요."
엘란츠는 고개를 끄덕인 후,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기 전까지 그는 꿈 속에서 지구에 묻은 어머니를 만났다.
잔뜩 혼나는 꿈이었다.
잡담 | 1844명이 읽었어요. 18.117.108.1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