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았던 그이기에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아루잔 역시 부족한 것이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기본적인 설정이 인간에게 맞추어진 것이 아니었기에 엘란츠의 요구에 따라 설정을 바꿔나갔다.
가장 처음으로 바꾼 것은 조명과 함선 내부에서 바라보는 외부의 투명도였다. 일부는 바깥을 보이지 않게 변경하고 어두컴컴하던 공간을 밝은 빛으로 밝혀 엘란츠가 안정감을 취하는데 도움을 준 것이다.
그 다음은, 그가 의자에서 잠을 청하던 생체 시간의 2일이 지난 때, 완벽하게 누울 수 있는 의자를 요구했다.
이후로는 불편한 것이 있을 때마다 바꿀 수 있는지 확인하는 엘란츠였다. 비록 식사는 아무런 맛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 보존제를 먹어야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4일이 되던 때에는 엘란츠가 아루잔은 무엇을 원동력으로 하여 움직이냐고 질문했고, 그 대답은 우주 에너지로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어렵게 늘어놓는 설명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이해한 부분은 단순했다.
'아루잔은 알아서 잘 움직이니 신경 쓰지 말자.'
그렇게 약 7일이 되던 때, 하얗고 둥근 행성이 보이게 된 것이다.
"드디어 행성 스뫄나가 보입니다!"
"정말, 전에 봤던 모습이랑 똑같구나..."
거대하고 하얀 덩어리가 제각기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모습.
"진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입하겠다는 아루잔의 말에 엘란츠는 문득 자신이 처음 그녀를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잠깐만, 지구에서 진입했을 때는 어떻게 했어?"
"그 때는 생명체가 없다는 가정 하에 사전 조사 없이 진입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네? 그렇게요?"
엘란츠는 자신이 우려하고 있는 사실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만약 또 자폭을 하겠다고 난리 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말의 뉘앙스는 의미를 충분히 전달해버렸다.
"아! 이전과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저는 이곳에서 사용자 엘란츠 님의 지원을 맡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사용자 엘란츠 님께서 직접 진입을 하고, 저는 이곳에서 정보를 전송 받아서 지원을 합니다!"
"잠깐, 그냥 사전 조사라는 걸 해서 가면 되는 거잖아."
아루잔이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스뫄나는 대기 중에 알 수 없는 구름 층이 가득 형성되어있기 때문에 조사가 불가능합니다. 만약, 엘란츠 님께서 먼저 진입을 해주신다면 그 정보를 바탕으로 제가 진입을 시도할 수 있게 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에 대한 조사가 충분히 필요합니다!"
"그러면... 만약, 내가 진입을 했는데 엄청 위험해서 죽을 수도 있다면...?"
"그 때는, 제가 직접 거둬들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아루잔이 방긋 웃으며 엘란츠를 안심 시키려고 했지만, 내키지 않는 그였다. 하지만, 달리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았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끙끙 앓기만 했다.
"그, 그래. 정보. 여길 찾아왔던 것처럼 그... 우주에 흐른다는 정보를 받아서 어떤지 알아보면 되잖아?"
"아니요. 확실하지 않은 정보로 진입했다가는 엄청난 피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피해를 주기 전에 방향을 바로 틀어버리면 되지 않아?"
"그래서는 제게도 피해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보여도, 전 섬세하니까요."
엘란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 이제 준비를 위해서... 이걸 받아주세요."
앉은 자리 앞에 작게 빛나는 하얀 종이가 나타났다.
"이게 뭐야?"
"지원을 해드리기 위해서 필요한 장치입니다. 팔목에 장착해주세요."
엘란츠는 장치를 오른손으로 집어 왼손의 팔목에 올려놓는다. 그랬더니 종이의 양 끝이 늘어나 손목을 휘감았다. 딱 붙어있는 것이 떨어트릴 수 없게 고정된 것이다.
"이제, 화면을 보고 제 이름을 외쳐주시면 언제든지 제가 도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화면...?"
"네! 여기!"
아루잔의 얼굴이 엘란츠의 손목에 있는 빛나는 하얀 종이. 즉, [화면]에 나타났다.
'뭐야, 이거...'
"언제, 어디서나 아루잔과 함께! 입니다! 사용자 엘란츠 님의 신체에 연결되었기 때문에 제가 하는 말을 언제나 들을 수 있고, 등록되어있는 모든 언어를 번역함과 동시에 해당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외에도 신체의 상태 체크와 알람 기능이 있으며..."
"응, 알았어. 그 정도면 충분한 거 같아. 그보다 난 어떻게 진입하는 거야?"
"준비 되신 건가요?"
"설마..."
"갑니다!"
엘란츠가 서있던 바닥이 사라졌다.
"왜 항상 이런 식이야───아────!"
이번에도 엘란츠는 아루잔 속의 통로에서 이리저리 미끄러져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왼쪽 팔목에 찬 화면으로부터 아루잔이 뭐라고 쫑알쫑알 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그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사방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 도착했다.
"...아셨죠?"
쉼 없이 쫑알쫑알 거리던 아루잔의 목소리가 엘란츠에게 제대로 전달되었을 때는 이미 모든 설명이 끝난 상태였다.
"아니, 전혀 모르겠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자리에 앉아주세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자리가 어디야?"
하얀색 조명이 들어왔다. 주위의 모습이 밝혀지고 나니, 엘란츠 두 명정도가 서있을 수 있을 법한 공간에 의자 하나가 놓여져 있다. 등받이 없이 팔걸이만 있는 이상한 의자다. 바깥의 모습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엘란츠가 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그의 뒤에서 등받이가 올라오고, 팔걸이는 그의 팔을 감싼다. 올라온 등받이는 앞으로 향해, 엘란츠의 몸 전체를 감싸 안았다.
"출발합니다."
아루잔의 목소리가 들려온 후, 벽이 흔들리고 뒤이어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크게 났다. 스뫄나를 향해 날아가는 소리다.
"궁금한 게 있는데, 그래서 수명을 늘린다는 장치는 어떻게 찾아야 해?"
"행성의 주민들에게 수소문할 것을 추천합니다."
"수소문?"
"네! 직접 물어보고 다니시길 바랍니다."
"공격하거나 그러는 거 아니야?"
"위험 등급이 높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공격성은 적다고 판단됩니다."
쿠──────웅───
커다란 소리와 함께, 진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엘란츠가 앉아있는 의자는 벽의 진동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도착한 거야?"
"이제 막 진입했을 뿐입니다!"
진동은 점점 더 심해지고 대기를 가르는 소리까지 더해져 엘란츠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리고 엘란츠는 깨달았다.
"혹시 이거 날 수 없는 거야?"
"네! 진입 외의 다른 작업은 불가능합니다!"
힘차게 외치는 아루잔의 말에 엘란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부서지거나 하는 일 없겠지?"
"아, 아마 없을 거... 거에요!"
아루잔의 떨리는 목소리.
얼마 전, 엘란츠는 아루잔에게서 다양한 지식을 배우면서 느낀 것이 있었다. 대체적으로는 딱딱하게 말하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격식을 차리기 위한 것이고, 실제로는 꽤나 감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그게 저는 이번이 처음으로 인간을 진입 시키는 거니까요!"
"맙소사."
바깥에서 보는 광경은 더욱 대단하다. 검은색 원형의 물체가 스뫄나의 전체를 뒤덮은 구름 층을 뚫은 후 붉게 변하고, 그 주위에 영향을 받고 있는 대기가 어둠 속에서 푸른 빛줄기를 내는 모습이다.
그리고 마침내,
───콰───...앙~!
엘란츠가 들어있는 아루잔의 작은 조각이 스뫄나의 지상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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