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듯하면서도, 애매한 말, 그러면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밝은 예언이고... 올바른 쪽으로 맞아 떨어질 환상적인 예언을 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그의 예언이 맞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갈수록 왕의 평가는 박해져서 이제는 쓸데없는 것을 떠드는 자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거다. 이 밑으로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자], [되는 대로 내뱉는 자], [더 이상 목 위가 존재하지 않는 자]와 같은 칭호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특히 [더 이상 목 위가 존재하지 않는 자]는 말 그대로 더 이상 목 위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기에 더더욱...
그동안 이러한 호칭을 받은 동료 예언자들이 여러 있었던 것이 위기라면 위기였다. 이제는 제레먼 만이 유일한 왕의 예언자인 셈이었다. 그 밑에 불쌍한 그의 제자들이 있지만, 만약 그가 목 위가 달아난다면 누가 그의 제자라고 자처하겠는가.
그나마 그가 지금까지 쓸데없는 것을 떠드는 자의 호칭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도 앞서 머리를 잃은 이들이 했던 말들과 달리 적어도! 듣기 좋은 예언을 한 덕분이었다.
이를테면...
"내일은 왕의 구멍에 커다란 문제가 생길 것이다.",
"다음이 되는 날, 왕의 부하가 떨어져 크게 노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시체가 일어나 불필요한 일을 저지를 것을 대비해야 한다.",
"내일이면 목이 달아날 자가 생길 것이다."
따위의 예언들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저기에는 정말 예언이 맞아 떨어진 말이 있기도 했다.
첫 번째 예언이 있던 때에는 왕이 복통을 호소하며 그날이 지나도록 변소에서 나오지 않은 날이었으며,
두 번째 예언이 있던 때에는 왕의 소식을 전하던 심부름 새가 하필, 눈 먼 사냥꾼의 화살에 맞아서 떨어지는 일이 있었으며,
세 번째 예언이 있던 해에는 날이면 날마다 무덤에 있는 썩은 시체들이 아무 이유 없이 마을을 뛰어다녔으며,
네 번째 예언이 있던 날에는 그 다음날 이 모든 예언을 했던 자가 왕에게서 새로운 칭호를 부여 받았다.
뭐, 그렇다. 그는 훌륭한 예언자였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수명을 단축 시키는 원인이 되었을 뿐이다.
때문에 오늘도 제레먼은 고민의 고민을 이어가며 잠에 들지 못하고 창가에 서서 고급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파이프를 입에 물고 조심스럽게 불을 붙였다. 다른 때는 오랜 시간을 들여야 간신히 불을 붙였던 때에 비해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붙었다.
우습다면 우스운 노릇인데, 그가 가지고 있는 스뫄나 파이프라는 것이 고급스럽게 생겨서는 파이프 끝에 달린 점화기가 도통 말을 잘 듣지 않는 게 문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꾸지 않고 있는 이유라면, 이상한 집착이라고 할까.
굳이 이 파이프를 이용해야 예언이 그나마 잘 맞는다고 믿고 있는 거다.
후우───
한숨과도 같이 내뱉는 한 모금에 그의 몸에 스며들고 난 후의 스뫄나 연기가 창 밖으로, 스멀스멀 하늘로 올라간다.
그러다 문득 바라본 하늘, 별이라는 존재가 있었는지 이미 먼 옛날 이야기가 된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영감이 떠오른다.
"별이 떨어진 때에 나라를 구할 이가... 아니지, 아니야. 그래, 용사가 나타날 것이다. 그게 좋겠어. 어차피 그럴 일은 없으니까. 괜찮겠지."
제레먼은 몸 속에 스며드는 스뫄나의 기운을 느끼며 웃었다. 드디어 내일 하루를 연장할 예언을 만들어 낸 것이다. 제대로 작동할지는 불분명했지만, 상관없었다. 자신의 역할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걸로 그만이다.
어차피 그는 쓸데없는 것을 떠드는 자. 일 뿐이니까.
다시 두 번째, 파이프에서 입을 떼고 스뫄나의 연기를 내뱉을 때. 좀 전의 빛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걸 보고도 그는 그저
'이상한데, 또 어떤 멍청한 녀석이 왕을 암살할 마법을 연구하는 건가.'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푸른 빛줄기, 그 안의 붉은 형체. 이전보다 더욱 커지는 모습에도 제레먼은 여유로웠다. 그게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깨달은 것은 세 번째로 파이프에서 입을 떼었을 때였다.
파, 파───자자작. 콰─────...앙~
예언자의 탑 정상, 제레먼의 거처가 약 절반 가량 부서졌다. 다행히 그 안에 있던 제레먼은 부서지지 않은 절반의 벽에 기댄 채 쓰러지듯 앉아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연기를 내뱉었고 그나마 남은 벽의 등불이 주변을 밝히고 있어 무엇이 자신의 앞에 있는지 볼 수 있었다.
후우───...
"어제는 어릿광대의 거처가 부서질 것이나, 나라는 평온할 것이라 예언했더니... 내일은 왕이 칭호를 하사하시겠군."
이제 그에게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하나씩 생겼다.
좋은 일은 예언이 맞았다는 것이고, 나쁜 일은 거처가 부서졌다는 것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진짜 나쁜 일은 왕이 하루는 물론이고 10일이 넘도록 그를 놀려 먹을 것이라는 거다.
"그래서 도대체 이건 어떤 놈의 짓이지?"
눈 앞에 있는 처음 보는 물체, 용의 알처럼 생겼지만 날아와서 쳐 박히는 용의 알은 없으니 알은 아닐 것이고, 신종 무기가 개발되어서 쐈다고 하기에는 그 숫자가 하나 밖에 없으니 도무지 정체를 모를 일이니 제레먼은 그저 파이프를 입에 다시 물고 생각에 잠길 뿐이다.
그러다가, 눈 앞에 있는 물체가 쩍─ 하는 소리를 내고는 반으로 갈라지더니 스뫄나의 쓰고 버려지는 연기와 같은 것이 흘러나오며 그 안에서는 어떤 소리가 웅얼웅얼 하는 것이 들려왔다.
"뭐야? 어떤 놈이냐!"
제레먼은 입에 물었던 파이프를 다시 손에 쥐고 외쳤다. 생명체가 안에 들어있는 것이 정말 알이 날라온 걸까? 아니면 드디어 새로운 침공법을 개발해낸 걸까?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나타난 것은 사악한 자들이 입을 법한 검은 옷을 온 몸에 두르고 핏빛의 붉은 천을 목에 두르고 있는 남자였다.
남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중얼거렸는데, 제레먼이 보기에는 그것이 사악한 주문을 읊는 것처럼 느껴졌다.
반면,
"아직 무사한 거 같은데, 나 다친 곳은 없는 거지?"
-네! 다친 곳은 없습니다. 다행이에요.-
"그런데 여긴 어디지? 무슨 집... 같은데."
-앞에! 생명체가 있어요.-
자신이 타고 왔던 아루잔의 조각이 깨지듯 열리고 나오는 연기가 사라져갈 때, 표정이 썩 좋지 않은 남자가 벽에 기대 앉아있는 모습.
"말이 통할까?"
-언어 체계를 파악하겠습니다.-
"언어 체계?"
-네! 확인되었습니다.-
아루잔은 제레먼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받아 그것이 어떤 언어인지 파악하는데 성공하였다. 더불어 엘란츠가 말하는 것을 해당 언어에 맞춰 자신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무의식 중에 해당 언어를 사용하도록 언어 회로를 변경함과 동시에 상대가 어떤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이제부터 하는 말은 전부 통역됩니다!-
"어서 정체를 밝혀라! 사악한 자라면, 당장 이곳을 떠나라!"
제레먼이 엘란츠에게 외치니, 엘란츠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되었다. 하지만, 정체를 밝히라고 해도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래서 나온 대답이라는 것이,
"사악한 자는 아닌데, 어떻게 하면 수명을 늘릴 수 있지?"
-잘하셨어요! 참, 저는 사용자 엘란츠님의 신체를 직접적으로 접속한 상태니까 다른 이들에게는 제 모습이나 말이 전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거에요. 조심해주세요!-
"알았어."
"아직 말하지도 않았는데..."
제레먼은 황당한 표정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스투피두드에서도 나름 키가 큰 편이었던 그는 엘란츠와 키 차이가 그다지 나지 않았다.
"사악한 자가 아니라면, 왜 내가 사는 곳을 부수고 들어온 것이고, 수명을 늘리겠다는 기이한 소리를 하는 건가?"
"어... 여기로 오면 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들었어."
조금 멍청한 말투로 말하는 엘란츠의 말을 듣고는 도대체 자신의 앞에 있는 이의 정체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궁금해진 제레먼은 파이프를 다시 입에 물고는 흐음- 하는 소리를 내며 스뫄나를 빨아들이고 충분히 길게 한 모금 숨을 내뱉은 후,
"어디서 왔지?"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뭐라고 해야 해?"
엘란츠는 제레먼의 물음에 손목의 아루잔을 보고 조언을 구했다.
-그러니까, 절 보고 그러면 안돼요! 이상하게 보잖아요!-
"미안, 익숙하지 않아서..."
"마치 정신이 나간 것처럼 구는군. 저주에 걸려서 추방 당했다고 하면 그럴싸하겠어. 보자... 하늘에서 운명의 사도가 떨어진 날 영광이 가득할 것이니. 그래. 좋군. 좋아. 뭘 하는 녀석인지 모르겠지만, 내 탑을 망가트린 걸 어떻게 보상할 생각이지?"
"보상이 뭔데?"
"내 탑을 부쉈으니 고쳐내란 말이다."
"음... 어렵지 않을까?"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엘란츠를 바라보며 제레먼은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생각했다.
"어렵겠지. 하지만 고치지 않으면 안될 거야. 곧 있으면 경비병이 올 거고, 넌 사로잡힌 짐승처럼 갇히게 될 테니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내가 원하는 걸 한 가지만 들어주면 되니까."
"그게 뭐야? 이상한 걸 시키는 건 아니겠지?"
제레먼은 다시 한 번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생각했다. 그가 긴 시간 동안 여자를 곁에 두고 살진 않았어도, 남자를 좋아하는 취향이 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뭘 말하는지 몰라도, 오늘은 늦었으니 여기에서 지내도록 해. 춥다고 불평할 생각은 하지도 마. 내려올 생각도 하지 말고. 얌전히 여기 있는 게 좋을 거야."
제레먼은 엘란츠를 뒤로 하고 밑으로 내려갔다. 그는 이제 막 올라온 게으른 경비병 두 명을 만났고, 지나치게 예언을 꺼내려다 벌을 받아 그런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여 돌려보냈다.
보통은 그렇게 말을 해도 안으로 직접 들어와 무엇이 원인이 되었는지 확실하게 조사해야 했지만, 그런 일은 너무나 귀찮은 것이었기에 또한, 그는 왕의 예언자이기도 했기에 두 경비병은 다시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악한 자들을 잘 보기 위한 벽을 찾아가서 기댄 채 잠을 청했다.
그것이 스투피두드 소속 경비병들의 자세였으니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제레먼이 그들을 쫓아내고 손님을 위해 준비해두었던 잠자리에서 누웠을 무렵, 엘란츠는 자신이 부순 탑의 밑을 바라보았다. 뛰어내릴 수 없는 높이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끼고 뒤로 물러났다.
뻥 뚫린 공간, 밤에 부는 차가운 바람이 엘란츠에게 휘몰아치고 제레먼이 기대고 있던 벽만이 바람이 부는 것을 막아주었지만 등불은 바람에 흔들려 사그라져 간다.
"이제 어떻게 하지? 아루잔."
-고문해서 알아내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 건 짐승 같은 놈들이나 하는 거야."
-이렇게 체온이 떨어지고 있는 곳에 두는 건 짐승 같은 짓이 아닌가요?-
"음... 살고 있는 곳을 부쉈잖아. 별 수 없어."
-그러면, 그냥 받아들이세요.-
"뭘 그렇게 중얼중얼 혼자 시끄럽게 굴어."
제레먼이 다시 계단 위로 올라와 앉아 있는 엘란츠를 내려보고 말했다.
"일어나. 언제까지 여기 있을 생각인 거야?"
쓸데없는 것을 떠드는 자, 제레먼은 츤츤거리는 구석이 있었을 뿐, 엘란츠가 정말로 덜덜 떨며 밤을 보내길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엘란츠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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