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먹어라."
미적지근한 물이 엘란츠의 입에 들어가자, 입안에 있던 빵이 사르르 녹아 부드럽게 물과 함께 목 안으로 넘어갔다.
"어디서 왔다고 했지? 지구라고 했나?"
"맞아. 지구라고 했어."
"들어본 적 없는 곳이군. 그래서 목적은 수명을 늘리는 거라고 했었지?"
"그래."
엘란츠는 음식을 먹기 위해 짧게 대답을 했고, 제레먼은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질문을 계속했다.
"도대체 무슨 수로 수명을 늘린다는 거지?"
"잘 몰라. 그냥 있다고 들었을 뿐이야."
"잠들기 전에는 계속 마치 누구랑 이야기 하는 것처럼 혼자 중얼거리던데 뭘 했던 거지?"
"말할 수 없어."
"어째서?"
"미안, 말하면 안되는 일이야. 그리고 잘 먹었어."
자리에서 일어나는 엘란츠, 제레먼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조금 당황했다.
"잠깐, 어딜 가려고 그러는 거지?"
"여기에 계속 있어도 수명을 늘릴 순 없잖아."
"왜 그렇게 수명을 늘리려고 하는 거지? 자신이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지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지."
"알고 있어. 그러니까, 떠나야 해."
엘란츠는 최대한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모르는 자가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친해지면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했던 어머니의 충고를 따른 것이다.
"그대로 나갔다가는 붙잡혀서 목이 날아가게 될 거 같은데? 그건 수명을 줄이는 일이지. 현명하지 못한 일이야. 게다가, 넌 내 탑을 부수기도 했고 말이야. 이미 말했지만, 넌 내가 원하는 걸 아직 들어주지 않았으니 그 전까지는 여기서 지내는 게 좋을 거야."
제레먼은 말을 마치자마자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조금 후회했다. 굳이 그렇게 말해야 했을까. 사실상 협박을 해버린 셈이다. 그러나 그 말을 곰곰이 들은 엘란츠는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나간다고 해도 지낼 곳이 없긴 마찬가지고, 아루잔에게서 상태 보존제를 받을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루잔 역시 제레먼의 말을 좋게 받아들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나쁘지 않아요. 감정 반응도 적대적이지 않고, 이 행성의 정보를 얻기에도 적당한 것 으로 확인됐어요.-
"날 도와주겠단 이야기야?"
"음... 서로 돕자는 이야기지."
쿵쿵쿵──
밑에서 위로 올라오는 요란한 발소리가 났다. 그들의 시선은 계단을 향했다.
그곳에서는 제레먼처럼 푸른색이 발에 닿을 듯 말듯한 긴 옷을 입고 있는 젊은 남자가 제레먼의 앞으로 다가와 목례로 인사를 건넨 후 말했다.
"선생님, 이제 왕성에 가실 시간입니다."
"그래, 오늘은 상태가 어떻지?"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답니다. 왕의 식사에 이상한 것이 올라온 모양입니다."
"또 어떤 녀석이 그런 짓을... 그래. 수고했다. 가도록 하지."
"부디 조심하시길."
제레먼의 제자는 다시 급하게 내려갔다.
"아무래도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해야겠군. 어때."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좋아. 그럼, 부디 얌전히 기다리기를 바라지."
제레먼은 말을 마친 후, 밑으로 내려갔다.
"뭘 하고 있어야 할지 모르겠어."
-저는 사용자 엘란츠 님의 상공에 본체를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상공에 본체를 옮긴다니?"
-행성 밖에서 대기 중인 저, 아루잔을 더욱 가까운 곳으로 옮기도록 할 예정입니다.-
"괜찮은 거야? 주위에서 보는 눈이 있지 않을까?"
-시각으로 구분할 수 없는 투명 모드로 전환하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대신,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세밀한 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완료하기 전까지 소통이 불가능해집니다.-
엘란츠에게는 조금 어려운 말이었지만, 아루잔에게 학습 받은 내용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알았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보도록 할게."
아루잔에게서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왼팔의 화면에는 이미 아루잔의 모습이 사라져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아래쪽, 계단에서 누군가의 발걸음이 들려왔다. 머리가 먼저 올라와서 어떤 인물인지 파악할 수 있었지만, 제레먼은 아니었다. 좀 전에 찾아와 제레먼이 왕성에 갈 시간을 알려줬던 그의 제자였다.
제레먼의 제자는 엘란츠에게 가까이 다가가 자신의 오른손을 왼쪽의 가슴팍에 댄 후,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다시 들어 말했다.
"안녕하세요. 전 선생님의 제자, 알란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멀리서 오신 귀한 손님이라고 들었습니다."
"어..."
엘란츠는 멍한 눈으로 알란을 바라보며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 덕에 알란은 조금 당황하는 눈치다.
'선생님이라는 게 아까 그 사람을 말하는 건가?'
"저도 앉아도 되겠습니까?"
알란은 자신과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듯한 엘란츠에게 웃으며 허락을 구했다. 실제로도 이 둘은 제레먼에 비해 많이 젊기도 했다.
"왜 나한테 그런 걸 물어봐? 그냥 앉으면 되잖아."
"선생님의 손님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죠. 그럼 앉도록 하겠습니다."
예의라는 것이 전혀 없는 엘란츠는 여전히 그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때문에, 자신의 이름 역시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누구? 나?"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알란을 보며 엘란츠는 주위를 살피다 말고 말했다. 도대체 선생님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재미있는 분이시군요. 혹시 이름을 밝히기 곤란하시다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내 이름은 엘란츠인데."
"아, 엘란츠 님이시군요."
"응."
"혹시 뭐 궁금하신 건 없으신가요? 저희 선생님께서는 되도록 엘란츠 님이 이곳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이라면 뭐든 알려줄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면, 수명을 늘리는 장치를 알아?"
알란은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저, 죄송합니다만 뭐라고 하셨죠?"
"수명을 늘리는 장치를 알고 있냐고 말했어."
하지만 제대로 들은 게 맞았다. 그 때문에 인상을 살짝 찌푸렸지만, 이내 다시 곤란한 듯 웃어 보였다.
"엘란츠 님께선 참 짖궃은 농담도 잘 하시는군요."
"농담이 아니야. 난 정말로 수명을 늘리는 장치를 찾고 있어."
알란은 엘란츠의 말에 다시 한 번 놀라며 주위를 빠르게 살펴보았다. 둘 밖에 없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는 자신의 입을 살짝 가린 채, 믿지 못할 말을 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목소리를 낮추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 선생님의 손님이 아니라면 좋은 꼴을 보지 못했을 테니... 되도록 밖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걸 자제해주시길."
"왜? 여긴 그게 큰 문제가 되는 거야?"
"엘란츠 님께서는 어떤 곳에서 오신 것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수명을 조작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달갑지 못하게 생각하기 마련이죠. 그것들의 대부분은 사악한 행위와 함께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테면, 다른 이의 생명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 분명 이 세계에는 수명을 늘리는 방법이나 장치 따위가 존재했다. 그렇기에 아루잔이 확실한 정보를 얻은 후에도 이곳을 추천하게 된 것이다.
"다른 방법은?"
"다이스 신께 맹세코, 그런 방법은 신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
"다이스 신? 그게 뭐지?"
알란은 엘란츠의 말에 손바닥이 위로 보이게 한 상태로 가볍게 뭔가 던지는 듯한 시늉을 했다. 그 후, 두 눈을 감고 말했다.
"다이스 신이시여, 무지한 자의 언행을 용서하시옵소서."
다시 눈을 뜬 알란은 엘란츠에게 조금 언성을 높였다.
"부끄러운 줄 아셔야 할 겁니다! 모든 것을 관여하는 신을 모욕하는 발언을 삼가 해주시죠."
"신? 어머니께선 신이 있다면 지금 같은 시기는 오지 않을 거라고 항상 말씀하셨어. 그러면서 내게 축복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도 아이러니하다고 말씀하셨지."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적어도 방금 전의 수명과 관련해서 다이스 신에 대한 무지를 밖에서 함부로 내보이지 않는 게 좋으실 겁니다. 어떻게 이곳까지 오셨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가는군요!"
후─ 알란의 짧은 한숨.
"이런, 죄송합니다."
이전의 부드러운 인상은 사라지고 심기가 불편한 모습 그대로 눈에 힘이 들어간 알란이었지만, 자신의 스승이 데려온 손님에게 예의를 갖추는 걸 잊지 않았다.
"왜 선생님께서 저에게 이런 부탁을 하셨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목적은 잘 알겠습니다만, 그 전에 배경 지식부터 갖추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배경 지식?"
"네, 다른 의미로 수명을 연장하고 싶다면 알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되겠죠."
"마치 생존에 필요한 기본 지식처럼 말이지?"
알란은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치켜뜬 후,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언제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은 스투피두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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