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끄러운 쇳소리가 가득 울려 퍼지는 중에 알란이 그를 불렀다. 쇳소리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남자는 그 즉시 망치를 내려치던 손을 멈추고는 알란과 엘란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웃던 얼굴은 한순간에 일그러지고, 눈은 이글이글 불타오르듯 그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엉!? 뭐야!?"
굵고 우렁찬 목소리.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무기가 될만한 걸 사려고 왔습니다."
"뭐!? 무기!? 뭔데!?"
성난 목소리, 성난 얼굴. 망치를 든 채로 몸을 돌려 알란과 엘란츠를 바라보는 남자의 불끈 쥔 주먹. 금방이라도 머리를 후려칠 것 같은 기세다.
"작업에 방해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언제 다시 찾아오는 게 좋겠습니까?"
알란은 잔뜩 화가 난 남자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를 갖췄다. 고개를 가볍게 숙여 사과의 뜻을 전한 후 얼굴을 들어 눈을 마주한 후 허락을 구한 것이다. 그러자, 남자의 일그러진 표정이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뭐야, 손님인가? 정말이냐?"
믿기지 않는 다는 듯 계속 물어보는 이 남자의 이름은 솔리온이다.
"네. 예언자이자 쓸데없는 것을 말하는 자, 제레먼 님의 부탁으로 무기를 구입하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런, 난 또... 망할 놈의 도둑 조합 녀석들이 찾아 온 줄 알았지. 이쪽이야. 따라와."
솔리온은 뒤돌아 뒤로 붙어있는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알란과 엘란츠 역시 그 뒤를 쫓아 들어갔다.
안에는 다양한 무기들이 들어오는 빛에 번쩍거리고, 다양한 모양의 방패와 갑옷들이 먼지 하나 없이 놓여져 있었다. 솔리온은 여전히 망치를 쥔 채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자, 어떤 놈을 찾고 있지?"
"무기를 한번도 다뤄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군요."
"그래? 그러면 이 녀석이 좋겠군. 어때?"
솔리온이 걸려있는 무기들 중 하나를 망치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 두껍지 않고 길지도 않은 평범한 검이다. 한 손으로 다루기엔 충분해 보였다.
"네, 같은 걸로 세 개 부탁 드리겠습니다."
"세 개? 같은 건 없어. 뭐, 비슷한 걸 찾는다면 이 녀석도 있지."
이번에는 반대편에 걸린 검을 가리켰다. 조금 더 길지만 두께는 비슷한 검이었다.
"이 정도면 꺼내는 것만 익숙해진다면 그 다음은 일도 아니지. 그런데 저건 아까부터 뭘 하고 있는 거지?"
솔리온은 인상을 구기며 알란의 옆에 얌전히 있어야 했을 인물을 가리켰다.
"알았어. 다 된 거지?"
-네! 상공에서 대기 중입니다. 제가 없는 동안 별 일 없으셨겠죠?-
"응. 무기를 보러 왔어."
-네? 무기요?-
엘란츠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등을 돌린 채, 아루잔의 연락을 받고 조용히 답하고 있었다. 알란이 다가온다.
"엘란츠 님?"
"왜?"
"뭘 하고 계신 거죠?"
"그냥, 아무 것도 아니야."
솔리온이 인상을 잔뜩 구긴 채, 엘란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잠깐, 너. 혼자서 말하고 있었지? 날 속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알란은 솔리온이 엘란츠에게 하는 말을 듣는 그 순간 굳어버렸다. 엘란츠 역시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을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변명을 말하기도 전에 솔리온은 갑자기 잔뜩 구긴 인상을 활짝 피고 웃었다.
"드디어 찾았군. 어떻게 알아본 거지? 역시, 옷 차림부터가 독특하다 생각했더니 마침내 녀석의 주인을 찾은 모양이군."
"네? 그게 무슨..."
알란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엘란츠와 솔리온을 번갈아보았다. 하지만 엘란츠 역시 이게 무슨 영문인지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자, 이 녀석을 들어봐라."
솔리온은 자신을 보기 위해 돌아선 엘란츠의 바로 등 뒤에 놓여진 검을 집어서 건넸다. 푸른색 빛나는 돌이 박혀있는 적당한 길이에 이전에 보았던 검에 비해 두께가 있는 검이었다.
엘란츠는 무슨 일로 그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정황을 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란 생각에 건네준 검을 잡아 들었다.
손 끝으로 전해지는 무게감이 상당했지만 들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사이,
-무슨 무기를 말씀하시는 거죠? 설마 지금 들고 계신 걸 무기라고... 그런 원시 무기를 어떻게 무기라고 부를 수 있는...-
"아루잔, 조용히 좀 해봐."
엘란츠는 거의 들릴 듯 말듯 아주 작게, 입 모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움직여 말했다. 알란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솔리온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벌써 이름까지 지으셨군. 좋아! 드디어 주인을 찾았군."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이 상황에 혼자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알란이 말했다.
"저건 말하는 저주가 걸린 검이거든."
"말하는... 저주가 걸린 검이라니..."
알란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눈이 되었다. 그러나 솔리온은 진지했다.
"예전에는 술을 잔뜩 마시고 작업을 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한 번은 얼굴을 모자로 가린 녀석이 손님으로 와서는 단검을 찾지 뭐야. 그래서 내가 그런 계집이 다루는 무기는 취급도 안 한다고 했더니, 당장 만들라고 하더군."
"그래서 만들었습니까?"
솔리온은 인상을 찌푸렸다.
"날 어떻게 보고, 당연히 만들지 않았지."
어떻게 보냐고 해도 알란은 이제 막 만나서 그가 어떤 성격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도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어떻게 저 말하는 저주가 걸린 검이..."
"그래, 그 놈이 단검을 만들지 못하면 아무 검이나 하나 볼 수 있게 보여 달라고 해서 보여줬지. 그랬더니 보고는 그냥 가버렸어."
"그러면 저기 저 검이 혹시?"
알란은 입을 계속 움직이고 있는 엘란츠가 들고 있는 검을 가리켰다. 그러자 솔리온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 놈이 보고 간 검이지. 그 다음날 어디서 계속 여자애 목소리가 들려서 찾아봤더니 계집 만도 못한 놈이라고 중얼거리고 있었지. 처음에는 누가 숨어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그래서 난 그 망할 놈이 내 무기에 저주를 걸고 갔다는 걸 알게 됐지. 최근엔 그래도 안 들려서 저주가 풀렸나 싶었지."
하지만 알란은 솔리온의 이야기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왜 하필 엘란츠인 걸까. 자신은 듣지 못한 소리를 솔리온과 엘란츠가 들었었고, 그마저도 솔리온은 최근에...
"지금도 들리시는 건가요?"
"아니, 녀석도 이제 포기한 거겠지. 한동안 대꾸도 하지 않았으니까."
이어서 지금까지도 전혀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덕에 한 가지 예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저주가 걸렸던 것은 검이 아니라 솔리온 자신이었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엘란츠는 무엇을 해서 그런 의심을 받은 것일까.
알란은 엘란츠를 보며 생각해봤지만, 여러모로 이상한 부분이 많았기에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 아까 본 무기와 저 무기를 같이 사겠습니다. 가격은 어떻게 되는 거죠?"
"아아, 그래. 보자, 저건 그냥 가져가. 어쩐지 재수가 없거든. 그리고 저거랑 저거는..."
솔리온은 엘란츠가 들고 있는 검을 가리키며 재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 16 실리온만 받도록 하지."
16 실리온, 은화를 뜻하는 이름이다. 덧붙여 금화는 골더라고 불렸다. 알란이 받은 것은 단 한 개의 금화. 즉, 1 골더였다.
"그러면 여기 이걸..."
"뭐야! 무슨 수작이야?"
솔리온이 위협적인 태도로 말했다.
"네?"
"16 실리온만 받는다고 했더니 왜 골더 같은 걸 주는 건데?"
아무래도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게 전 심부름 온 것 뿐이라 가진 건 이게 전부입니다."
그러자 깊은 한숨과 함께 솔리온의 굳어있던 표정이 다시 풀렸다.
"후우. 그래. 그랬었나. 요즘 장사가 전혀 안돼서 그런 큰 액수를 거슬러줄 수가 없어. 저 녀석의 대금으로 하는 건 어때?"
솔리온은 좀 전까지 재수 없다며 거저 준다고 했던 검. 바로 엘란츠가 들고 있는 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뻔뻔하기도 하지.
"방금 전에는 그냥 가져가라고..."
"마!"
갑작스러운 솔리온의 함성에 알란이 놀라 뒤로 한걸음, 자신도 모르게 물러섰다. 엘란츠 역시 자칫하면 들고 있던 검을 떨굴 뻔했다.
-공격인가요!?-
아루잔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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