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닌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
박완서 <그남자네 집>
"이봐요 아저씨, 그래도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죠.
신념을 가지고 목숨 걸고 싸운 사람이 있으니까
이 만큼이라도 평화가 온 거 아닌가요?"
"이봐요, 학생. 단지 어떤 이념을 위해서 목숨을 걸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남을 비겁자 취급 하지 말아요.
나는 취향도 목숨 걸 만한 가치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9.28수복이 되자 마자 꼭 현역군인이 될 줄 알고
제2국민병에 기꺼이 징집 돼 나갔던 것도
개인의 취향을 용납하지 않는 세상하고는
목숨 걸고 싸워도 좋다는 투지가 용솟음쳤기 때문이었으니까."
박완서 <그남자네 집>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눈을 맞추고 있으면
이렇게 예쁜 아기는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은
만족감보다 더 큰 기쁨을 느꼈다.
그건 우리 아기는 장차 절대로
나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확실한 예감이었다.
출세를 할 거라느니, 돈을 많이 벌 거라느니
하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이 아이는 선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모든 좋은 것, 아름다운 것과
교감하고 느끼고 구가할 것이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것도 좋아했지만
업는 것은 또 얼마나 좋은지
아기도 업히는 걸 좋아했다
처네를 둘러 아기를 업으면
아기의 얼굴은 볼 수 없지만
아기의 온 몸이 느껴졌다
좋으면 어깨에 두 손을 얹고
사정없이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둥근 머리를
등에 안락하게 기대고 잠이 들기도 하고
등에다 사정 없이 오줌을 싸기도 했다
아기가 무얼하든 심장의 건강한 고동을
직접 내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동네 한바퀴를 돌고오면 재롱이 하나씩 늘었다
곤지곤지, 짝짝궁, 쥐암쥐암을 가르친 건
내가 아니라 골목 안 식구들이었다
시어머니가 업고 다닌 덕택으로
아기는 낯을 안 가리고 아무나 좋아했다
특히 자기 또래의 아기만 보면
악수를 하거나 볼을 부벼야만 만족했다
아기가 가장 먼저 알아들은 말도
엄마 아빠 맘마 다음으로는 악수와 뽀뽀였다
아기는 식구들과 동네 사람뿐 아니라
꽃과 나무와 멍멍이도 좋아했다
아기가 좋은 것을 보고 온몸으로 좋아한다는 감정표현을 할 때
행복이라 부르는 것의 원형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우리아기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좋은 것을 향한 감수성이 활짝 열린 아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박완서 <그남자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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